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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인터뷰

동문 INTERVIEW

미국과 한국 경계서 이민자의 시 짓는 김은자 동문 "고독이 제 문학에 깊이 더했죠"

  • 조회수 258
  •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인터뷰자
  • 작성일 2025-05-28
  • 시인 김은자 동문(작곡과 78) 인터뷰


"귀먼자?"


잃어버린 이민 가방을 찾으러 간 미국 우체국. 직원은 김은자 동문(작곡과 78)을 낯선 발음으로 불렀다. 그 순간, 그는 이민자로서 새로운 정체성과 마주했다.


타국의 삶, 이중 언어의 혼란, 그리고 모국어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속에서 김은자 동문은 40여 년간 한국어로 시를 쓰고 이민자의 목소리를 담은 라디오를 진행해 왔다. 미국에서 살아가는 '경계인'으로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김은자 동문의 이야기를 숙명통신원이 들어봤다.

 

1.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숙명여대 작곡과를 졸업한 김은자입니다. 1982년, 남편이 건설회사의 뉴욕지사로 발령을 받으면서 미국 생활을 시작했고, 뉴저지에 거주한 지 40년이 됐어요. 현재는 전업 작가이자 한인 최대 동포 방송인 1660 AM 라디오 방송 진행자입니다. 붉은작업실 문학회 문학 교실과 AWCA(Asian Women's Christian Association)의 시 창작 교실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뉴욕에 방문한 도종환 시인과 라디오 인터뷰를 하는 김은자 동문(왼쪽)


2. 미국 생활 중 시를 쓰기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전공과 다른 분야인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니, 시를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할 것 같네요. 사실 시를 쓰는 일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꿈이었어요. 어릴 적 받은 상 대부분이 글쓰기와 관련된 것이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교내 백일장에서 늘 우수작으로 뽑히곤 했죠. 


제가 음악을 전공한 건 아버지의 영향이 컸어요. 교회 장로였던 아버지는 딸이 피아노를 쳐서 교회 반주를 하길 바라셨고, 그렇게 시작한 피아노가 자연스럽게 음대 진학으로 이어졌어요. 


하지만 마음속에는 늘 글에 대한 열망이 있었어요. 음대 시절에도 남몰래 전혜린 시인과 최승자 시인의 시를 탐독하며 그 마음을 계속 키워갔죠. 결혼 후 미국에 와서도 그 염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어요. 아이를 등에 업고 창밖을 바라보던 어느 날에는 윤동주, 이육사 같은 문학인들이 둥글게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는 환영을 보기도 했어요. 믿기지 않죠? 그렇게 꾸준한 창작 열정과 문학인을 향한 동경이 결국 다시 펜을 들게 한 듯해요.


3. 작곡을 전공한 경험이 시를 쓰는 데 어떤 영향을 줬나요?


저의 문학 세계에는 음악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작곡을 전공한 덕분에 정서적인 토대를 다질 수 있었고, 시를 쓸 때도 더 풍요롭고 서정적인 감성을 담을 수 있었어요. 시 창작과 작곡은 겉으로 보기엔 다른 예술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맥락에 있다고 생각해요. 시는 언어로, 작곡은 음으로 표현하는 예술이잖아요. 가장 이상적인 시는 음악이 된 시라고 생각해요. 시와 음악은 서로 다른 색을 띠고 있지만 모두 예술로서 우리에게 깊은 울림과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같은 언어라고 믿어요.


4. 첫 시집 『외발노루의 춤』에서 타국에서 모국어로 문학 활동을 하는 것을 '외발로 추는 춤'이라 표현한 점이 인상 깊어요. 이중 언어의 환경 속에서 모국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재외동포의 삶은 '모국어를 끌어안고 타국어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중언어자로 살아간다는 건 어느 한쪽도 완전하지 않은 경우가 많죠. 두 언어 중 어느 하나도 어휘나 표현이 완전하거나 유창하지 않을 수 있고, 문화적 정체성에서도 혼란을 겪기 쉬워요. 


그렇지만 저는 이런 삶을 슬프거나 애달프게 보지 않아요. 오히려 재외동포 문인은 다양한 언어와 문화 속에서 글을 쓰기 때문에 시의 확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중 언어의 환경 속에서 모국어로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분명한 축복이에요. 혼돈의 세상 속에서 나를 잃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것이 바로 모국어로 글을 쓰는 행위죠. 이 얼마나 감사하고도 행복한 일인가요?


2015년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 당선.

5. 미주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한국 신춘문예에 대한 꿈도 오랫동안 품고 있었다고요.


2004년 미주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제 의식 속에서 발효된 모국어가 이질적인 문화 속을 둥둥 떠다니다가 작은 돌부리 옆에라도 피어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내왔죠. 한국 문단에서도 통할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어서 한국 신춘문예에 대한 꿈을 끝내 접지 않고 10년 동안 치열하게 글을 써왔어요.


그 과정에서 '동포 문인의 시는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는 고민과 '내 시가 어디쯤 와 있는지 모르겠다'는 불안도 늘 함께했어요. 모국어로 글을 쓰는 이상, 결국 바라보게 되는 곳은 한국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던 중 2015년, 4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에 당선됐어요. 이방에서의 시 쓰기는 고독한 여정이었지만, 그 시간이 결국 저에게 또 다른 시 세계를 열어준 용기이자 힘이 됐습니다.


6. 오랜 시간 라디오를 통해 이민자들의 삶과 문학을 전해왔는데요. 현재 진행 중인 '김은자의 행복한 문학'을 비롯해 그동안의 방송 활동을 소개해 주세요.


현재 1660 AM K-라디오에서 '김은자의 행복한 문학'을 진행하고 있어요. 뉴욕KCBN미주기독교방송과 뉴욕라디오코리아를 거쳐 지금의 K-라디오까지 이어오고 있죠. 뉴욕라디오코리아에서는 뉴욕 최고의 방송인 장미선 씨의 프로그램 속 '못다 배달한 사연' 코너를 맡아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한 편의 글로 엮어 전하는 방송을 했어요. 새벽에 생선 가게를 여는 동포부터 뉴욕에서 정치인으로 성장한 한국인 2세까지 다양한 분을 인터뷰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고 뉴욕라디오코리아 방송인상을 수상하는 기쁨도 누렸죠.


그 후에는 한국 시를 소개하고 해설하는 '시(詩)쿵'을 10년간 진행했고 현재는 '김은자의 행복한 문학'으로 5년째 방송을 이어가고 있어요. 바쁘고 메마른 이민 생활 속에서 한국 문학을 통해 위로받고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어요. 최근에는 모교 선배님인 신달자 시인 인터뷰가 큰 호응을 얻었고, 김남조 시인을 추모하며 그분의 시 세계를 소개하는 방송도 진행했습니다. 대학 시절, 문학개론 수업 시간에 김남조 선생님을 멀리서 뵌 적이 있었는데 작곡과 학생이던 저는 그분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던 기억이 나네요.


김은자 동문(맨 왼쪽)이 뉴욕현대미술관(MoMA) 조봉옥 행정담당관(맨 오른쪽)과 라디오 인터뷰하는 모습.

7. 현재 뉴욕의 붉은작업실 문학회 회장이자 붉은작업실 문학교실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붉작문학교실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요?


저는 원래 문인협회나 특정 단체에 속하지 않았어요. 함께 글을 쓰는 것이 힘이 될 수도 있겠지만 본질보다 다툼이 많은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거든요. 그런데 한인사회 행사에 초청돼 시 낭송과 문학 관련 방송을 하던 중 시를 배우고 싶다는 분들이 생겨났고, 그분들과 함께 글을 나누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붉은작업실 문학교실'을 열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사람들이 모였고 여러 명의 등단 작가를 배출했어요. 지금도 문하생들이 꾸준히 시 공부를 이어가고 있답니다.


붉작문학교실 가을학기 종강 단체사진.


8.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도 끊임없이 창작을 이어가는 동력이 궁금합니다.


시 쓰기는 제 삶의 거의 전부예요. 바쁜 삶 속에서도 *시줄을 놓지 않았고, 시를 가르치면서도 저 역시 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이번 네 번째 시집 『그해 여름까지가 수선화』와 두 번째 산문집 『아름다운 도둑님』은 각각 8년, 10년 만에 출간했는데요. 사실 두 책 모두 3년 전쯤 출간할 예정이었지만, 당시 28살 아들을 잃은 분의 추모 책을 도와주느라 미뤄졌어요. 추모 작업에 전념했던 그 시간 동안 인간의 삶을 가장 섬세하고 진심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일이 문학임을 다시금 확신하게 됐고 제 문학도 한층 깊어졌어요. 방송과 강의, 제자 양성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지만 언제나 1순위는 시 쓰기였어요. 그것이 제가 끊임없이 창작을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이라고 생각해요.


*시줄: 베틀에서 가로로 짜는 실. 문학에서는 시를 이어가는 행위를 뜻한다.


9. 시를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시를 쓰기 위해서는 끝없이 나 자신에게 말을 걸어야 해요. 때로는 나를 고발하고 때로는 나를 위로하면서요. 모든 시작점은 결국 '나'입니다. 농사를 지을 때 씨앗부터 뿌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가장 먼저 흙을 고르는 일부터 시작하죠. 시 쓰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모르는 내 가슴속 돌들을 골라내고 마음을 평평하게 하는 일이 먼저예요. 그러고 나서 자신의 진심을 담아 '그림처럼 그려내는 것'이 중요해요.


10. 동문님의 여러 작품 중에서 시 <귀먼자>를 인상 깊게 읽었어요. 타국에서의 정체성에 대한 사색이 담긴 작품인데요. 이 시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나요?


<귀먼자>는 실제 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시예요. 공항에서 잃어버렸던 이민 가방이 6개월 만에 동네 우체국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갔는데, 그곳 직원이 제 이름인 김은자(KIM EUN JA)를 미국식으로 '귀먼자'라고 부르더군요.


그 순간, 영어권 사회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저의 정체성을 다시 마주하게 됐어요. 당황스럽고 슬픈 감정이 복합적으로 밀려왔고 그때의 경험을 고스란히 시에 담았죠. 제 두 번째 시집 『붉은작업실』에 수록된 이 작품은 2011년 윤동주 해외동포문학상을 받으면서 많은 분과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아래 그 시를 소개해 드릴게요.


귀 먼자 (KIMEUNJA) / 김은자


공항에서 잃어버린 두 개의 이민가방이 도착한 것은

미국에 도착하고 육 개월 후, 동네 간이 우체국

찌그러진 깡통 이민 가방이 내 발 앞에 놓였을 때

이름표에는 이름이 반쯤 지워져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KIMEUNJA 귀.먼.자.로 불렀다 운명 같은 해독 이후 나는

귀머거리가 되었다 모국어가 목마른 날이면 먹먹해진

귀를 홀로 만지며 대숲을 뒹구는 사람들 틈 속에서

지퍼를 열면 붉은 울음이 빗방울처럼 매달려 있었다

이민 올 때 엄마가 사준 꽃무늬 원피스는 아직도

한쪽 팔이 꺾인 채 옷장 한 켠 박제처럼 걸려 있다

귀머거리의 속성은 엷게 떨다 눈을 잠가 버리는 것

겨울에 떠나 여름에 도착한 개화를 모르는 그리움

깊숙이 손을 넣으면 이민 올 때 언니가 사준 벙어리

장갑이 딸려 나온다 귀가 멀면 입도 멀어지는 법

이국異國은 명치뼈 아래께 느껴지는 통증 같은 것

흰 편지에 봉인된 얼굴들을 넣고 돌아서는 색색色色의

사람들 발음 틀린 소통이 오래 아프다



11. 사람들에게 어떤 문학가로 기억되고 싶나요?


저는 미국에서 43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한국어로 시와 산문을 쓰고 한국어로 방송을 하는 사람이에요. 한국 시의 변화와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지금도 젊은 시인들의 작품을 꾸준히 읽으며 공부하고 있어요. 어떤 문학가로 기억되기보다는 죽을 때까지 배우고 성장하는 문학인이 되고 싶어요.


12. 자신을 '이방인'처럼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저는 '이방인'이 된 것을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해요. 또 '이방인'보다는 '경계인'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은데요. 저처럼 오랜 시간 해외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한국에서도, 현재 살고 있는 나라에서도 어딘가 어정쩡한 경계에 서 있어요. 기존 집단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쉽게 버리지 못하면서도 새로운 집단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죠. 하지만 경계에 있다는 것은 두 세계를 모두 알고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미국에 살면서 고독과 소외감을 느낄 때도 많지만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경험하며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사람은 각자의 고독을 품고 살아가고 그 고독의 무게는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에게는 그 결핍이 문학과 예술을 가능하게 했어요. 고독과 소외, 그리고 처절했던 순간들이 저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제 문학에 깊이를 더해줬어요. 모교인 숙명여자대학교가 앞으로도 시대의 횃불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저 역시 어디에서나 자랑스러운 숙명인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취재: 숙명통신원 23기 서예린(문헌정보학과 24), 23기 윤지원(테슬전공 22)

정리: 커뮤니케이션팀